그린 나이트(The Green Knight, 2021)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그린 나이트는 '가웨인과 녹기사'라는 이름의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어릴 때, 아서왕 이야기에서 이 이야기를 똑같이 보았다. 원래 이야기를 보면, 고결한 기사 가웨인은 신의를 지키고, 충성스럽다. 

영화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리고 현대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동진 평론가가 좋은 해석을 했지만, 나는 다른 생각과 감상을 가지고 있어서 글을 쓴다.

가웨인은 방탕한 젊은이다. 이렇다할 업적도 없고, 술집 여자와 사귀고 있다. 왕의 조카지만, 이렇다할 업적도 없다. 어느 크리스마스 파티에 아서왕은 연회를 열고, 모르간 르 페이는 마녀 집회를 연다. 아서왕의 연회는 빛과 원 안에서 이루어진다. 모르간의 집회는 삼각형 창문의 빛 아래서 이루어진다. 삼각형은 비밀의 지식이며 어둠이다. 마녀들은 상징적인 주술의 물건들을 모으고, 모르간은 메세지를 쓴다.

마녀들의 의식이 끝나자, 그린 나이트가 소환된다. 그린 나이트가 올 것을 알고 있는 아서왕과 멀린은 가웨인을 아서왕의 용사로 그린 나이트에게 맞서게 한다. 그리하여, 모르간이 아발론을 향해 만든 저주는 그녀의 아들에게 씌워진다. 중간에 보면, 아서스가 멀린을 바라보고, 멀린이 눈짓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왕은 늙고 노쇄했지만, 왕국은 굳건했다. 그리고 어린 가웨인은 젊은 혈기로 그린 나이트와 대결하고, 목을 벤 대가로 자신의 목을 내어줘야 하는 상황에 빠진다. 고대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작은 물건을 재물로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주면, 소원을 들어주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교환의 가치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목을 자르면 죽지만, 초자연적인 존재는 목을 잘라도 죽지 않는다. 그래서 게임이 되고, 사람은 고통 받게 된다.

여기서 녹색 기사가 맺는 말이 멋지다. 우린 모두 이 이야기가 목을 자르지 않고, 작은 상처로 끝난다는 것을 안다.

"...(중략)... 뺨이 긁히든 목이 잘리든... (중략)... 그 후 신뢰와 우정으로 헤어질 것이다."

모르간의 저주가 빗나가아들이 죽는 운명이 되자, 모르간은 아들을 구하기 위해 두 번째 마법을 부려서 허리띠를 만들어 준다.

가웨인이 모험을 떠나면서 어린 아이들이 쫓아온다. 어린 아이들은 가웨인을 영웅이라고 알고 있다. 이제 어린 아이가 좋아하는 이야기에서 어른의 이야기로 영화가 변한다. 도시를 벗어나자 광대한 황야가 나온다. 황야에는 죽음이 있다. 사람들은 숲을 불태워 살 곳을 만든다. 그리고 교차로에는 눈을 가린 해골이 있다. 우린 계획하고, 미리 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눈 먼 상태나 마찬가지다. 자신의 앞의 죽음을 보지 못한다. 

첫번째 고난은 전쟁터다. 전쟁이 이미 끝난 후인데, 가웨인은 화살에 죽은 병사를 본다. 전쟁터에서 한 남자를 만나는데, 그 남자의 두 형은 전쟁터에서 죽었고, 자신도 공명심에 눈이 멀어 전투에 나갈 뻔 했지만, 어머니가 말려서 살았다고 한다. 남자는 빠른 길을 알려주고, 대가를 요구한다. 가웨인은 첫 번째 거래로 동전 한 닢을 주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기사인 가웨인은 멋진 이야기와 다르게 산적에게 너무나 쉽게 무력화된다. 도끼와 말을 빼앗기고 묶인 신세가 된다. 그대로 있다면, 숲 속에 묻힌 채로 죽었을 것이다. 가웨인은 기어가서 버려진 검으로 포박을 끊는다. 줄을 끊으면서 손을 베게 되지만, 포박이 풀리자 다시 망토를 걸치고, 숲을 헤멘다.

두 번째 고난은 외딴 집에서 이루어진다. 피로했던 가웨인은 빈 집에 가게 되는데, 음식은 모두 썩어 있다. 어둠 속에서 2층으로 올라간 가웨인은 침대를 발견한다. 침대에서 잠깐 잠이 든 가웨인은 어떤 여자를 만난다. 잠옷만 입은 여자는 자신의 잘린 머리를 찾아달라고 한다. 두 번째 거래가 나온다. 죽은 이에게 대가를 요구할 수 없다. 머리는 호수 속에 있는데, 호수에 들어간 가웨인은 성에서 멀린이 느낀 것처럼 붉은 빛 속에서 통찰력을 얻어 깊이 가라앉은 잘린 머리를 찾아낸다. 

그리고 아침이 되자, 침대에 오래 전에 죽은 시신이 있었다. 머리를 돌려주자, 주변이 밝아오자, 가웨인은 도끼가 돌아온 것을 보게 된다. 산적이 훔쳐간 임무, 퀘스트가 다시 가웨인에게 돌아온 것이다.

가웨인은 굶주림과 환각 속에서 여행을 계속하다가 여우를 만난다. 여우와 함께 가면서 술집 여자가 자신을 사랑하지만, 거부했던 이야기를 알 수 있다. 고통 속의 여행에서 무거운 짐인 도끼를 짊어지고 가던 가웨인은 거인들을 보게 된다. 가웨인은 거인에게 의지하려고 하지만, 정작 거인이 손을 뻗자, 두려워한다. 이 때 여우가 가웨인을 구한다. 세 번째 고난이다. 나는 여우는 이성이라고 생각한다. 고난과 환상 속에서 이성의 힘으로 벗어나 겨우 성을 발견하게 된다.

네섯 번째 고난은 여우의 도움으로 발견한 성에서 이루어진다. 성에는 눈 먼 노파와 성주 부부가 산다. 부인은 매우 박식한 사람으로 세상의 모든 지식과 이야기를 알고 있는 듯 하다. 성주가 자리를 비운 사이, 부인은 책을 선물하고, 키스를 답례로 받는다. 부인은 가웨인을 계속 유혹하지만, 가웨인은 거부한다. 그리고 사랑의 징표로 받은 작은 구슬을 빼앗긴다. 왜냐하면 진실로 술집 여자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인이 그려준 가웨인의 초상화는 왕국에 걸린 모습과 달리 피로하고, 차가워 보인다.

거인을 지나치면서 가웨인의 세계는 역전된다. 그리고 부인이 그린 가웨인의 초상화도 거꾸로 걸려 있다. 나중에 보는 가웨인의 회상에서는 제대로 걸려 있는 초상화가 나온다. 그래서 이 성과 주변은 현실 밖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부인은 녹색 기사가 왜 녹색인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붉은 색과 대비하여 이야기 한다. 붉은 색과 녹색은 매우 비슷한서 반대되는 색이다. 붉은 색은 이성과 지혜, 문명과 욕망을 뜻하지만, 녹색은 생명이면서 죽음을 말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모든 것은 결국 녹색이 된다고 말한다. 문명은 녹색을 계속해서 밀어내려고 하지만, 결국 녹색이 폐허와 묘비를 뒤덮는다고 한다. 나중에 녹색 예배당에 가면, 부서진 십자가와 건물을 볼 수 있다. 녹색은 삶이면서 죽음이기 때문에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며, 신이라고 볼 수도 있다.

원래 이야기에서는 가웨인이 부인의 유혹을 고결하게 피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영화에서는 두려움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만큼 부인 앞에서 떳떳하지도 않고, 다음 날 돌아올 성주의 보복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성주는 첫날 사냥에서 거대한 사슴을 가져온다. 가웨인에게 줘도 가웨인이 가져갈 수 없는 그런 짐승을 잡는 사람인 것이다. 성주에게 힘으로 밀리지만, 부인에겐 지혜로도 밀린다.

부인은 잃어버린 가웨인의 허리띠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만들었다고 한다. 평론가는 모르간이 녹색 기사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녹색 기사를 소환했을 뿐이다. 부인은 녹색 기사처럼 초월적인 존재다. 그래서 허리띠는 모르간이 부인의 힘을 현신 시킨 것일 뿐이다. 그래서 이 성의 흰 옷을 입고,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노파는 초월적인 공간에 들어간 아들을 지켜보는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부인에게 굴복하고, 허리띠를 얻은 가웨인은 이제 마법을 믿기 시작한다. 믿을 뿐만 아니라 집착한다. 마지막 장소로 가는 가웨인은 성주를 숲 속에서 만난다. 성주는 가웨인이 부인과 키스를 한 것을 알고 있었고, 키스를 가져간다. 그리고 가웨인에게 여우를 돌려준다. 여우는 죽으러 가는 가웨인을 가로 막는다. 왜 죽음을 찾아가느냐는 여우에게 가웨인은 두려지 않다고 한다. 여우는 마법의 허리띠를 찬 채로 그런 말을 하는 거냐고 비아냥 거린다. 그러자 가웨인은 여우를 쫓아버린다.

가웨인은 용감한 기사답게 녹색 기사와 약속을 지키려고 하지만, 두려움이 그를 도망치게 한다. 그리고 산적이 훔쳐간 마지막 물건, 말을 되찾는다. 말을 되찾아 바람처럼 도시로 도망치면서 다시 산적이 돌아다는 벌판을 지난다.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이 장면을 통해, 산적과 만난 일부터 모든 것이 퀘스트의 일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실로 돌아온 가웨인은 왕위를 물려받고, 애인을 다시 만나고, 아들을 얻는다. 아들을 얻으면서 도시를 떠나기 전에 한 말대로 애인에게 많은 동전을 준다. 그리고 왕위에 맞는 배우자를 맞이하고 딸을 얻는다. 그것이 이성적인 판단이기 때문이다. 금빛 왕관은 가웨인이 물려 받은 후에는 점점 빛을 잃는다. 전쟁이 일어나고 아들을 잃는다. 성도 잃는다. 성에는 성에서 부인이 그려준 초상화가 걸려 있다. 

그제서야 가웨인은 깨닫는다. 결국 혼자 남는다는 사실을. 두려움 속에서 바라고 원하고 얻으려고 했던 영애와 영광은 모두 허망하다는 것을. 결국 그것들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언제나 차고 있던 허리띠를 자신의 뱃속에서 내장을 뽑듯이 벗어던지자, 가웨인의 목이 떨어진다.

젊고 야망에 차, 영웅들과 견줄 이야기를 얻으려고 했던 기사의 이야기는 현대적인 교훈으로 다시 태어난다. 고대의 이야기에서 가웨인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폭력 앞에서 복수가 복수를 부르는 세상에서는 목을 자른 자에게 용서 받고, 구원 받는 이야기였지만, 이 이야기의 진정한 힘은 고결함에 있다. 현대의 고결함은 자신의 욕망과 집착을 이성으로 가리고, 눈 먼 채로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의 바라보며 지금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모르간은 아들을 사랑해야 했고, 아서왕은 조카를 사랑해야 했고, 가웨인은 애인을 사랑했어야 했다. 눈 멀고 죽기 전에. 지금 이 순간에. 성공에 집착해서 진정한 사랑을 놓치고, 권력에 집착하다가 가족을 잃는다. 현대인은 언제나 젊고, 부유하고, 현명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밑에는 전혀 다른 진실이 있다. 우린 그 진실을 외면하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진정성 있게 사랑하는 이를 볼 수 있지만, 우린 모두 지나고 잃은 후에야 알게 된다.

추위와 황량함이 가득한 북쪽으로 6일 거리에 있는 오래된 폐허는 따듯한 햇빛과 평화, 이끼와 덩굴, 잎사귀로 덮여있다. 현대 문명을 잠시 잊고, 7일째 크리스마스에서 우린 사랑하는 사람들과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난 뺨이 긁히고 끝났으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