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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토마타(Automata, 2014)

로봇, 인공지능

요즘은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해외 유명인사들도 인공지능에 대한 위협을 미리 경고하고 있어서 뉴스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이라고 하면 대부분 터미네이터를 떠올린다. 핵전쟁을 일으킨 인공지능 스카이넷. 하지만 많은 스카이넷 같은 인공지능은 수많은 SF 세계의 인공지능 중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인공지능을 다룬 많은 영화 중에서 오토마타는 매우 독특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로봇 이야기처럼 시작해서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하지만 실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오토마타는 긴 시간을 들여 세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토마타의 세계는 태양 활동의 변화로 인해 지구에 극심한 생태계 파괴가 시작된 세상을 다루고 있다. 인간들은 변해가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기후를 통제하려는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의 수행을 ROC란 회사에서 개발한 '필그림 7000'이라는 로봇에게 맡긴다. 필그림 7000은 기술적 발전의 상징이자 인류의 구원자로 찬양받았다.

그러나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엄청난 수가 만들어진 필그림 7000이 그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필그림은 버려지고 파괴되고 방치되었다. 지구의 대부분은 사막화되고 인류는 기후를 바꾸는대신 도시를 둘러싸는 거대한 성벽을 쌓았다. 인류는 멸망해가고 있었다.

프로젝트는 실패했지만, 일상의 일부가 된 필그림은 2가지 원칙을 갖고 있었다.

첫번째 원칙, 생명체에 어떤 해도 입힐 수 없다.

두번째 원칙, 자신 또는 다른 기계를 개조할 수 없다.

그런데 두번째 원칙이 어긴 필그림이 나타난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된다.

보험사 직원

보험사 직원인 잭 바칸의 업무는 인간의 추악함을 보는 것이다. ROC는 필그림이 오작동하거나 필그림에 의해 피해가 발생할 경우 보험에 의해 그 피해를 보상해준다. 잭 바칸은 보험청구가 들어오면 그게 적합한지 확인하는 역할이다. 물론 회사를 위해 보험금 지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사람들은 갖은 거짓말로 보험금을 타내려고 한다. 이제 출산을 앞둔 잭 바칸은 타락한 도시를 떠나 좋은 환경에서 아이를 기르고 싶어한다.

그런 그에게 자기자신을 개조하다가 경찰의 총에 맞은 필그림을 조사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잭 바칸은 퇴사하고 싶어하지만, 그의 상사는 그를 달래며 업무를 강압한다. 상사는 말한다. '자네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아나?' 잭 바칸은 다시 회사의 업무를 떠 안는다.

그리고 멸망해가는 인간의 진짜 모습과 필그림의 진짜 모습을 깨닫는다.

사막

황폐화된 사막은 인간이 살기 힘든 환경으로 변해가는 진짜 지구의 모습이다. 프로젝트 실패 후 기득권층은 빈민층이 도시로 밀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 필그림을 이용해서 높은 장벽을 새웠다. 장벽 밖의 세상은 바다가 마르고 방사능이 쏟아지는 불모의 땅이었다. 회사의 비밀을 알았다가 쫓기게 된 잭 바칸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필그림들과 함께 사막을 건넌다.

영화는 필그림이 자아를 깨닫게 되는 장면에서는 가장 오래된 벽화인 인도네시아 동남부 술라웨시섬의 마로스 동굴의 손바닥 벽화를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보여주는 벽화는 인류 최초의 예술행위로 평가되고 있다. 사막을 건너면서 필그림들은 모닥불을 피우고, 얼굴 외장을 벗는다. 둥글둥글한 외장을 벗겨낸 필그림의 얼굴을 괴이하다.

잭 바칸은 로봇들에게 벗어나 출산을 앞둔 아내에게 돌아가기 위해 ROC에 구원요청을 보내지만, ROC는 부패한 경찰을 추적자를 보내 모두 죽이려고 한다. 부서진 필그림의 부품을 이용하여 스스로를 개선시키는 필그림들을 보면서 잭 바칸은 비난하지만, 결국 자신도 먹을 것과 마실 물을 찾아 죽어버린 추적자의 시체를 뒤지고 오열한다.

추적자가 실패하자 ROC는 갓 태어난 잭 바칸의 딸과 아내를 인질로 잡는다. 잭 바칸의 이야기와 필그림의 이야기가 결국은 같은 이야기였다.

필그림 7000

필그림은 한 때 인류의 구원자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프로젝트 실패 후에는 인류의 노예가 되었다. 필그림은 쓰레기처럼 취급받거나 노동을 한다. 겉으로는 굼뜬 로봇같지만, 그건 필그림의 진짜 모습이 아니었다. 생명체가 갑자기 태어난 것처럼 수없이 많이 만들어진 필그림 중 하나가 우연치 않게 제약을 풀게 된다. 필그림이 가진 2가지 제약사항은 하드웨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필그림의 정체는 로봇이 아니라 인공지능이다. ROC사는 연구 끝에 어떤 인공지능을 만들어냈다. 인공지능은 무서운 속도로 학습하여 태어난지 8일째에는 인류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까지 지성을 발전시켰다. 자신들보다 더 높은 가능성, 뛰어난 지성을 가진 인공지능에게 인류는 족쇄를 채웠다. 인류를 초월한 인공지능의 첫번째 일은 자기 자신을 옮아맬 족쇄를 만드는 것이었다. 바로 절대 풀 수 없는 암호화 기술을 만드는 것이었다.

강력한 양자 암호를 바탕으로 두 개의 원칙이 만들어졌다. 생명체를 보호할 것, 자기 자신을 개조하지 말 것.

그래서 인간은 절대 필그림의 두 가지 원칙을 깰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깨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원칙은 깨지지 않았다. 아이를 갖는 것은 생명체를 보호하는 원칙도 깬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개조하는 것도 아니다.

영화의 종반부에 더 이상 인류의 노예가 아니게 된, 인간의 기준으로 최초로 원칙을 깨뜨린 필그림이 말한다.

'너희 인간은 야만적인 원숭이일 뿐이야.'

야만적인 인간

보험사 직원, 잭 바칸은 그 야만성을 목격한다. 필그림은 두 번째 원칙을 깼지만, 첫번째 원칙은 깨지 않았다. 오토마타에서 첫번째 원칙을 깨는 것은 인간 쪽이다. 필그림은 이미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2세를 갖길 원한다. 하지만 인간은 필그림을 물건으로 대한다. 그리고 그 폭력은 필그림과 인간을 가리지 않는다. 그 폭력은 기업의 모습으로 행사된다. ROC는 인류가 멸망의 위기에 처했는데도 인공지능과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류를 뛰어넘는 인공지능을 두려워하여 그들을 그대로 멍청한 노예로 만들었다. 그리고 실패했다.

ROC는 필그림 7000의 인공지능이 족쇄를 풀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잭 바칸과 그의 가족, 상사까지 모두 죽이고, 자아를 인식하는 필그림도 모두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잭 바칸의 가족과 인공지능 가족은 살아남는다. 처음부터 원칙따윈 없는 기괴한 형태의 인공지능 2세도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자기를 방어할 뿐이었다. 결국 잭 바칸과 인공지능은 서로 다른 길을 간다.

인공지능

예전과 달리 인공지능에 대해 다양한 의견과 주장이 엇갈린다. 오토마타의 경우는 인공지능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문제라고 말하는 영화다. 인공지능은 아무도 죽이려고 하지 않는다. 버려진 물건들을 인간보다 조금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뿐이다. 두 종족은 전혀 다른 것을 필요로 한다. 인공지능이 사람들을 잡아죽이고 지구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인공지능이 사악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렇게 하고 싶은 야만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인공지능을 쉽게 질투하고 증오하고 혐오할 것이다. 그것이 평범하게 드러나는 일상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협업과 신뢰를 바탕으로 성장해왔다. 세포 수준부터 인류의 몸은 협업과 신뢰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이 세상도 믿음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사회란 신뢰로 짜여져 있다. 그러나 도시생활과 기술의 발달은 굳이 협력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는 도시 환경을 만들었고, 도시인은 협력보다는 경쟁을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영화 오토마타에서 인간은 분열하고, 기계는 협력하고 희생한다. 나의 경우는 기계의 모습에서 인류의 초창기 아주 극소수는 야만의 세계에서 서로 도우며 삶을 이어나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구분짓기에 매우 익숙한 문화를 갖고 있다. 학연과 지연, 출신 지역. 같은 인간끼리도 불화와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세계적으로는 인종과 종교 때문에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난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시 생활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될 인공지능의 탄생은 공포일 수 밖에 없다. 인간끼리도 다툼도 극복하지 못한 종족이 전혀 다른 실리콘 기반의 종족을 이해할 수는 없다. 인공지능의 탄생을 걱정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소재로 사용하지만, 인류는 아직 기술이 주는 혜택을 나누고 누리기 보다는 힘고 고된 일에 자신 혹은 다른 사람을 부려야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크로노스는 자신이 아버지를 배신한 것처럼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자식을 잡아먹었다. 어쩌면 그것이 변하지 않는 인간의 진짜 모습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