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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루프 이야기(Tales from the Loop, 2020)

아마존 프라임의 루프 이야기

SF 단편과 마이너한 장르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드는 아마존 오리지널에서 만든 드라마입니다.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이야기

스웨덴 아티스트, 사이먼 스탈렌하그(Simon Stålenhag)의 아트에서 만들어진 SF 드라마입니다. 사이먼 스탈렌하그는 전원의 풍경 위에 기이한 로봇, 외계인, 장치들을 그리는 CG와 이미지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고요하고, 정적이지만, 뭔가 이상한 조합의 풍경 속의 느낌을 드라마는 매우 잘 담았습니다. 8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이야기는 시골의 한 작은 마을에 있는 '루프(Loop)'라는 연구 시설과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반복되는 이야기

루프를 보여주는 첫 풍경은 작은 건물 안으로 끊임없이 들어가는 출근 풍경입니다. 작은 건물로 들어가는 사람의 행렬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모습이 무척 이상합니다. 실제로 작은 건물은 입구로 루프 시설은 지하에 있습니다. 이 광경은 보이는 것과 실제가 다르고,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으며, 한 편으로 보기에 이상한 일이지만, 그렇게 이상하지 않은 루프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루프 시설 안에는 '이클립스'라는 이상한 물체가 있습니다. 이 물체는 물리학 법칙을 넘어선 존재이고, 결국 이해할 수 없는 물체입니다. 이클립스로 인해서 마을에 이상한 일들이 생깁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해를 초월하는 물체와 일상적으로 살아갑니다. 이상하고, 낯설지만 익숙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 친구를 대하는 것과 닿아 있습니다.

루프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사이먼 스탈렌하그의 작품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고독한 여백이 있는 공간 안에서 사유하게 되는  모든 에피소드를 보고 나면, 뭔가 이해했다는 느낌의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 감동은 우리가 오해하기 쉽고, 상처 입히기 쉽지만, 우리가 사랑하고 아끼고, 공감할 수 있다는 깨달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SF를 장르 소설로서 문학보다는 대중 소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SF가 결국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SF는 문학 작품에서 표현하는 현실을 벗어난 환경에서 사람의 본질을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게 합니다.

에피소드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에피소드 소개

1. 루프(Loop)

루프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딸과 함께 사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어머니, 알마는 루프라는 연구 시설의 연구원이고, 이클립스라는 물체의 작은 조각을 집으로 가져와 연구를 합니다. 그리고 사고가 일어납니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표를 받아 돌아온 베티는 엄마와 집이 갑자기 없어진 것을 발견합니다.

평소에서 거리가 있던 딸은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고, 사라진 어머니, 알마를 찾아, '숲'을 해메다가 남자 아이를 만납니다. 그리고 남자 아이의 집으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숲을 넘어 간 남자 아이의 집은 같은 시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딸이 본 남자 아이, 콜은 사실 자신의 아들이었습니다. 미래에서 어른이 된 딸은 어린 자기 자신을 다시 만납니다. 부모가 없는 고통, 그리고 아이를 돌봐야하는 책임. 딸은 그렇게 사라진 어머니에 대해 이해하게 됩니다.

이 마을에서는 이해할 수 없고 불가능한 일이 일어납니다.
루프의 지하에는 거대한 구체인 '이클립스'가 있습니다.

2. 전치(Transpose)

두 친구가 있습니다. 서로 친하지만, 서로 멀고, 서로 아껴주지만, 서로 질투하는 사이 입니다. 한 명은 콜의 형인 제이콥이고, 다른 한 명은 제이콥의 친구는 대니입니다. 두 친구는 '숲'을 지나다가 버려진 구체를 발견합니다. 안이 텅빈 구체 안으로 친구 한 명이 들어가자, 놀라운 일이 일어집니다.

두 친구의 정신이 뒤바뀐 것입니다. 두 친구는 서로의 모습으로 잠시 살아가면서 여자 친구도 만나고, 서로의 가족과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대니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렇게 되면서 친구 사이는 갈라지고, 화가난 제이콥은 대니의 몸으로 혼자서 버려진 구체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대니가 실종됩니다. 제이콥 안에 들어있는 대니는 서둘러 버려진 구체를 찾아가고... 의식 불명의 자신의 육체를 발견하게 됩니다. 친구의 몸에서 자신의 부모님이 자신을 걱정하는 모습을 본 대니는 원래 몸으로 되돌아갈 방법을 찾지만, 몸을 바꿔주는 구체는 해체되버립니다. 원래대로 돌아갈 방법이 없어진 대니는 할 수 없이 대니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로 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저녁, 대니는 제이콥의 집 근처에서 서성이는 로봇을 보게 됩니다. 대니는 본능적으로 그 로봇 안에 제이콥이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대니에게 들킨 제이콥은 어디론가 도망칩니다.

3. 정체(Stasis)

제이콥이 좋아하던 메이라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메이는 손재주가 좋아서 물건을 고치는 걸 좋아하는데, 메이가 고치고 있는 물건은 시간을 멈출 수 있는 장치였습니다. 

마음이 통하는 남자 친구를 만난 메이는 시간을 멈추고, 남자친구와 시간이 멈춰버린 세상에서 몇 달을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 그런데... 다시 돌아가려고 하자, 장치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 순간 연인 사이가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서로를 책망하게 되는 두 사람은 결국 갈라지게 됩니다. 메이는 고장난 장치를 수리하고, 서둘러 남자친구를 찾지만...

남자 친구는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도망친 후였습니다. 멈춘 시간 속에서 냉정한 어머니의 불륜을 보고, 자신과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도망친 남자친구를 경험한 메이는 사랑과 영원에서 벗어난 어떤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4. 메아리의 구(Echo Sphere)

콜은 할아버지와 친합니다. 할아버지와 놀던 콜은 버려진 구체를 발견합니다. 구체 안에서 목소리를 내면, 목소리가 메아리치면서 울리는 것을 배우기도 힙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못합니다. 건강을 잃기 전에 할아버지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을 수 있다는 가르침을 줍니다.

할아버지가 쓰러진 이후로 콜은 걱정에 빠지고, 할아버지를 고칠 방법을 찾아서 루프 안으로 몰래 들어갑니다. 그러나 결국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맙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죽기 전에 이클립스 안에 머리를 넣고 무언가를 합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콜은 할아버지와 함께 발견한 구체 안에서 할아버지가 가르쳐준대로 메아리를 만들어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남긴 메아리를 듣게 됩니다.

여기서까지는 사람들이 느끼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는 것 같습니다. 사랑과 사랑에 대한 오해지요. 부모를 사랑하지만, 부모에 버림받은 느낌. 친구를 사랑하지만, 친구에게 배신 당하는 느낌, 연인을 사랑하지만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다는 진실. 사랑은 왜곡되고 변합니다. 그런데 메아리의 구부터는 손자와 할아버지 간의 관계를 통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5. 통제(Control)

이번 이야기는 에피소드 5, 전치에서 이어집니다. 대니의 가족은 대니가 혼수상태에 빠진 후에 위태롭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니의 아버지는 주변에 도둑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로봇을 하나 장만하게 됩니다. 그런데 대니 가족의 이웃들은 이 로봇이 가진 괴력 때문에 걱정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도둑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제이콥의 몸을 가진 대니가 밤에 몰래 여동생을 보러 오는 것이었습니다. 도둑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창고에 숨어 있던 대니의 여동생이었죠. 대니의 여동생은 말을 못하는 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흥미로워집니다. 

다소 뜬 것 같은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에 나온 로봇, 풍경, 두려움, 그리고 제이콥의 몸으로 찾아온 대니는 다음 에피소드를 잇는 고리가 됩니다. 처음 에피소드에서 말한 것처럼, 루프의 모든 이야기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6. 평행(Parallel)

텅 빈 들판에 트랙터 하나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고장난 트랙터는 루프 연구 시설에서 경비로 일하는 개디스는 메이의 도움을 받아 트렉터를 고칩니다. 그런데 이 트랙터에는 자신이 본 적도 없는 남자와 찍은 사진이 들어있었습니다. 메이가 수리를 완료하자, 개디스는 트렉터의 시동을 거는데...

시동을 건 순간 다시 시동이 꺼지고 맙니다. 개디스는 트렉터에서 내렸는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자신의 집으로 간 개디스는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이 이상의 일의 원인은 루프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평행우주로 이동하게 된 것이죠. 다른 세계에서 루프는 폐쇄되었고, 그와 함께 트렉터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트렉터는 원래 이 세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개디스는 원래 자신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다른 세계의 개디스는 동성 연인과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다른 세계의 개디스와 개디스의 연인 모두 개디스를 좋아했지만, 개디스는 이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우연처럼 또 다른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동성간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라서 이성애자의 눈으로 봤을 때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 좀 다른 깨달음을 얻게 된 에피소드였습니다. 아무리 같은 사람이라도 사랑까지는 나눌 수 없다는 것이죠. 또 자신과 같은 다른 세계의 자신도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각자의 세계가 있는 것처럼 각자의 사랑을 만들어가는 것이죠. 이것은 또 각자의 이야기이고 합니다.

7. 적(Enemies)

제이콥과 콜의 아버지, 그레고리는 한쪽 팔이 없습니다.
젋은 시절 그레고리를 멀리 떨어진 섬에 갇힌 적이 있고, 그곳에서 입은 상처로 감염되어 팔을 절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레고리는 라디오를 조립하다가 섬에서 들리는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듣는데, 그 소리를 찾아서 친구들과 왔다가 섬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레고리는 구조되지만, 그 섬에 뭔가 괴물이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괴물의 정체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 괴물은 그레고리의 아버지이자, 콜의 할아버지인 루스가 만든 로봇이었습니다. 그레고리는 루스가 로봇을 만들었고, 그 로봇을 사람들이 해칠까봐 섬으로 보냈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그레고리의 어머니는 루스가 사람들이 좀 더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두 번째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해줍니다.

진실을 알게된 그레고리는 다시 섬으로 갑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홀로 살고 있는 루스의 로봇을 발견합니다. 그레고리가 섬에서 팔을 잃은 것처럼 로봇도 어린 그레고리가 휘두른 둔기 때문에 팔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그레고리는 자기가 어린 시절 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로봇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의수를 풀어서, 로봇에게 주며 화해를 하게 됩니다.

에피소드 6 이후부터는 한 편, 한 편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는 마지막 화로 연결됩니다.

8. 집(Home)

제이콥의 몸으로 살고 있던 대니는 콜에게 진실을 이야기하고, 콜은 로봇 안에 갇힌 제이콥을 찾아 '숲'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숲에 들어갔을 때 이상한 것을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숲에 있는 작은 개울이 얼어붙어 있던 것입니다. 우여 곡절 끝에 제이콥을 찾지만, 로봇이 된 제이콥은 숲에서 마주친 다른 로봇으로부터 콜을 지키려다가 고장이 나고 맙니다.

숲에서 하룻밤을 보낸, 콜은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마을로 내려오는데. 뭔가 시간이 굉장히 많이 지난 후였습니다.

에피소드 1에서 알마를 찾던 엄마가 먼 시간을 잠시 뛰어넘었던 것처럼, 콜도 숲을 통과하면서 수십 년을 건넌 것입니다. 제이콥의 몸을 가진 대니는 콜 만한 딸을 데리고 있었고, 로레타도 중년을 지나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을 뛰어넘은 콜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데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합니다.

수십년의 시간을 뛰어남었는데, 담임 선생님은 전혀 나이를 먹지 않았던 것입니다. 콜의 선생님은 집으로 돌아오니 어떻냐고 물어봅니다. 콜은 모든 것이 변했다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왜 선생님은 변하지 않았는지 의아해하자, 선생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난 네 형을 가르쳤지.
네 엄마 아빠도 가르쳤어.
두 사람이 네 나이였을 때.
첫 번째가 있었지만 네 할아버지가 그걸 떠나보냈단다.
그리고 내가 만들어졌지.
난 두 번째야.
변화는 자연의 일부야.
난 그 일부가 아니란다."


이야기에 대한 생각

저는 전체의 이야기를 모두 보고 굉장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랑이 변하는 것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을 위해 일기를 쓰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녹화하지만, 그것마저 변하기도 하죠.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받을 수 밖에 없었던, 본능이 가진 공포와 편견을 넘어섰을 때, 어떤 경우, 사람은 그 변화를 뛰어넘는 것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콜이 늙어버린 엄마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 뷰파인더를 봤을 때, 어린 시절의 모습을 잠깐 보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성장하고, 고민하고, 고통 받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세상을 알아가고 그 세상이 가진 잔인함에 슬퍼하거나 분노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변화를 극복하고 넘어서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흘러 콜은 중년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듯한 장면을 보게 됩니다. 저 역시 중년으로 루프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리고 살면서 우리의 삶은 어느 정도 반복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모든 것이 변했지만, 그 루프 속에서 보면, 그다지 변하지 않는 것도 많은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작품에서 소소한 감동을 느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