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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러브, 데스 + 로봇(Love, Death & Robots, Netfliex, 2022)

러브, 데스+로봇의 시즌3 애니메이션이 넷플릭스에 업데이트 되었다. 다소 사색적이고, 잔잔했던 시즌2와 달리 매운 맛으로 돌아왔으며, 좀비, 로봇, 크툴루, 외계인이 잔뜩 나오는 화려한 라인업이다.

그 중 가장 흥미로운 단편 몇 가지를 소개한다.

스웜(Swarm)

스웜은 먼 우주의 소행성대에 있는 거대한 소행성 안에 거주하고 있는 스웜이라는 외계종에 대한 이야기다. 이 외계종은 소행성 안에서만 거주하고 있으며, 여행을 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확장하지 않는다. 이들은 암석 안에서 균류를 길러 먹이로 삼으며 폐쇄적인 생태계를 구축했다.

개미와 꿀벌처럼 목적에 따라 계급을 나누어 집단 생활을 하는 종이지만, 단일한 종족으로 구성되지 있지는 않다. 최소 15종의 공생 생물들이 스웜과 함께 살고 있다. 외딴 우주에 살고 있으니 스웜과 함께 살려면 우주 여행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게 의미있는 복선이 된다. 

강인한 생명력과 생태계를 유지하는 질서에 인상을 받은 아프리엘 박사는 다른 외계 종족의 도움을 얻어 스웜이 있는 곳에 도착하게 된다. 아프리엘 박사의 우주 여행을 도운 종족은 인간이 스웜에 관심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가진다. 스웜은 그저 유기적인 로봇처럼 움직이는 곤충을 닮은 종족으로 폐쇄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외계 종족의 눈에 인간은 탐구적이며, 유순한 종족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프리엘 박사는 탐구적이긴 했지만, 유순하진 않았다. 아프리엘은 스웜의 유전 정보를 얻게 되면 인류가 가진 번영과 식량, 통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웜의 핵심 부분에서 모든 개체의 유전 정보를 갖고 있는 여왕의 알 하나를 훔치려고 한다.

아프리엘 박사는 훔친 알에서 정보를 뽑아내서, 인류를 위해 일하는 유기체 로봇 같은 생물 자원으로 만들려고 했다. 아프리엘 박사는 스웜이 자각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스웜의 군체를 연구하고 있던 미르니 박사를 설득한다. 미르니 박사를 설득한 아프리엘은 몰래 가져온 합성 페로몬을 이용해서 자신만의 스웜 집단을 만들고, 스웜이 핵심인 여왕의 알을 하나 훔치게 된다.

생존과 지성

몸 안에 숨겨온 합성 페로몬을 사용한 아프리엘 박사는 군체 내에 자신만의 집단을 만들고, 손쉽게 여왕의 알을 얻게 된다. 그러나 순조로울 것 같았던 아프리엘 박사의 계획은 결국 스웜에게 발각된다. 위협을 느낀 스웜은 특별한 유전 프로세스에 따라 거대한 두뇌를 만들어내게 된다. 자각한 두뇌는 몇 주만에 스웜의 역사를 다시 기억해 내고 인류를 학습한다. 이름이 없는 스웜의 지성은 아프리엘 박사를 따르던 일꾼 무리를 도살하고, 마르니 박사를 생포한 후, 그녀의 몸을 조정하여 아프리엘에게 경고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깨어난 지성이 집단을 생존하게 하기 위한 도구로 표현되었다는 점이다. 스웜이 위협에 맞서 각성한 것처럼 아프리엘 역시 자신을 뛰어넘는 이성을 근거로 스웜의 힘을 훔쳐 생존하려고 했다. 스웜의 힘은 판단하는 이성과 지식을 탐구하는 지성의 결여되어 강력한 것인데, 인류가 살아남아 먼 훗날 번성하기 위해 이걸 훔친다는 것이 이 단편의 특별한 점이다. 

스웜이 겪은 위협은 인류 뿐이 아니었다. 스웜은 아주 오랫동안 생존하면서, 다양한 위협을 겪었고, 스웜과 공생하고 있는 15종 역시 스웜에 항복하거나 정복된 종족이라고 볼 수 있었다. 스웜은 아프리엘 박사에게 한 종족을 소개한다. 그 종족은 아주 오래 전에 온 은하에 퍼져 번성하였으며, 가장 전략적인 방법으로 스웜을 위협했던 조상을 가진 개체였다. 스웜은 스웜을 따르는 이 종족의 개체를 번식시켜 고대의 지성체를 내부부터 붕괴시켰다. 그 결과 200백만년 지성체였던 개체는 지금은 스웜에 동화되어 아프리엘이 토해낸 토사물이나 주워먹으며 스웜에 기생하는 신세가 되어 있었다.

스웜은 아프리엘 박사에게 2가지 제안을 한다. 첫 번째는 스웜의 통제 아래 아이를 낳고 살아가라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지금 죽음을 택하고, 죽은 후 아프리엘 박사의 클론을 만들어 인류를 공격하겠다는 것이었다. 아프리엘 박사는 자신이 스웜을 이용하려던 방식 그대로를 역으로 제안받은 것이다. 하지만 아프리엘 박사는 항복을 거부하고, 결국 죽게 된다.

단편은 이렇게 끝나고, 여운을 남긴다. 우주여행도 다른 종족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인류가 수백만년을 생존했던 스웜과 싸워 이길 수 있을지, 아니면 스웜의 일부로 동화되어 쓰레기나 주워먹고 사는 잊혀진 종족이 될 것인지는 상상의 영역 속의 꿈 혹은 악몽으로 남는다.

브루스 스털링

스웜(Swarm)은 멋진 CG를 제작하기로 유명한 Blur Studio에서 작업한 17분 단편으로 원작은 SF소설가인 브루스 스털링(Bruce Sterling)이 쓴 동명의 단편이다.

1982년 The Magazine of Fantasy & Science Fiction에 처음 출판되었으며, 나중에 1989년 Crystal Express 컬렉션으로 시 출판되었다. "Swarm"은 Nebula, Hugo 및 Locus 상 후보에 올랐다. 위키피디아에 올라온 소설 스웜의 내용을 보면, 애니메이션 단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브루스 스털링의 세계관 중에 Shaper/Mechanist universe가 있는데, 태양계는 유전공학자인 셰이퍼와 컴퓨터 기계기술자인 기계공으로 파벌로 나뉘어져 있다. 주인공인 아프리엘은 셰이퍼 파벌에 속한다.

아프리엘 박사가 군체에 인공 페로몬을 실험하기 시작하자 둥지 내에 화학적 불균형을 일어났고, 군체의 본능적 메커니즘이 촉발되어 지능이 필요하다는 신호가 된다. 이렇게 태어나는 알은 여러 종에서 파생된 우수한 지능과 잘 발달된 유전 기억을 가진 새로운 계급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렇게 태어난 계급은 지성을 가지며 둥지의 대표하는 공격적인 면이지만, 일꾼이나 전사처럼 군체를 위해 봉사할 뿐이었다.

군체의 지성은 애니메이션과 같이 위협을 일으킨 종족의 대표자의 유전자를 이용해서 복제된 개체를 만들고, 이 개체를 통해서 해당 종족을 감염시키고 파괴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 과정은 인체의 면역 체계와 같은 방식으로 바이러스의 일부 유전 코드를 확인하고, 같은 코드를 가진 항체를 만들어 바이러스나 세균을 절멸시킨다. 이미 경험한 질병의 유전자 코드 일부를 남겨두는 인체의 면역체계처럼 군체도 자신을 위협한 종족을 동화시켜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 내의 묘사에 따르면, 군체에 포함된 공생체는 세대를 거치며 점차적으로 지성이 완전히 사라지고 생존 자체 외에 다른 목적이 없는 조상의 유전적 기억에 불과할 때까지 단순하게 진화된다. 군체의 지성에 따르면 종족 불멸은 지능 없이만 가능하기 때문에 군체에 동화된 종족의 후손만이 유일하게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 군체의 유전 경험에 따르면 지능에 "감염된" 종족은 수천 년 동안만 지속되며 이후에는 다시는 소식을 들을 수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