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 훌룡한 작품을 남겼지만, 암으로 돌아가신 작가에게 말할 수 없는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플레바스를 생각하라. 대수학자를 읽고 게임의 명수를 읽게 되었다. 처음 읽은 플레바스를 생각하라는 다 읽긴 했는데,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대체 주인공이 왜 그렇게 컬쳐를 싫어했는지 알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호르자는 왜 마인드를 찾으러 간 것일까? 마인드는 정말 중요한건가?
게임의 명수에서 그 모든 의문이 풀렸다. 게임의 명수의 원래 제목은 The Player of Games 인데, 한글 제목이 잘 지어진 것일 수도 있고 아닌 것일 수도 있다.
컬쳐
컬쳐는 인공지능이 기술이 이상적으로 발달한 세계이다. 컬쳐는 다양한 수준의 인공지능에 의해 관리되는 거대한 세계이며, 많은 항성과 식민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집안일을 돕는 인공지능부터, 행성을 관리하고, 다른 문명이나 종족과의 접촉을 관리하는 등 컬쳐의 모든 것은 훌룡하게 조율되었고, 체계가 잡혀있으며 효율적이다. 컬쳐의 세계를 운영하는 최고의 지성이 마인드다.
컬쳐의 사람들은 유전질환으로 고통받는 일도 없고, 갑자기 병으로 죽는 일도 없다. 사고로 죽는 일도 없다. 컬쳐의 사람들은 항상 드론이라고 불리는 기계와 인공지능들에 의해 보호 받으며, 문제가 생기면 바로 드론이 날아와 구조해준다. 몸 자체도 유전적으로 강화되어 있어서 팔이 잘리더라도, 다시 자란다. 치아를 뽑아도 다시 자란다.
일은 할 필요가 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된다. 모든 노동과 생산은 기계가 알아서 한다.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 , 음악가가 되거나 우주 탐험가가 되거나 아니면 그냥 놀면 된다. 물론 만드는게 취미라면 무언가 만들어도 된다. 당연히 화폐도 없다. 분쟁 역시 없다. 분쟁이 생길만한 일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가질 수 있는 만큼 가질 수 있고, 성별조차 원하는대로 바뀌면된다. 정보가 제한되는 일도 없다. 그냥 알고 싶은 정보는 모두 공개되어 있다. 성별을 바꿀 수 있으므로 당연히 남녀 성별의 차별도 없다.
기계들은 선량하고 친절하며, 사람들은 유쾌하고, 모든 것이 합리적이다. 컬쳐는 그런 세상이다. 모험을 원하면 모험을 할 수 있고, 그냥 놀아도 된다. 그런 세상이라 그런지 컬쳐에는 게임이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다. 알아주는 게임 플레이어인 주인공은 거의 모든 게임을 마스터한 최고의 플레이어로 게임 플레이와 게임에 대한 논문 작성으로 컬쳐 내에서 매우 유명한 사람이다. 이름은 매우 길지만, 보통 구게라고 불린다.
아마드 제국
구게는 권태에 빠져 있었다. 그를 이길 수 있는 플레이어도 없고, 더 이상 마스터할 게임도 없다. 그런 그에게 이상한 일들이 우연처럼 일어나고 다른 외계 문명과 접촉하는 일을 맡는 '콘텍트' 부서에서 구게에게 연락이 온다. 구게는 곤란한 사정에 빠져서 콘텍트의 요청에 따라 아마드 제국으로 게임을 하러 떠나게 된다.
이상하게도 아마드 제국은 컬쳐에겐 70년 넘게 비공개되어 있었다. 정보가 모두 공개되는 컬쳐에서 이런 일은 매우 이상한 일이었고, 구게에게 주어진 임무는 더욱 이상한 일이었다. 아마드 제국에 가서 아마드 게임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상향에 가까운 컬쳐와 달리 아마드 제국은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제국이며 끊임없는 정복활동을 통해 영토를 넓혀 가고 있었다. 아마드 제국은 지구의 '인류'의 기준으로 봐도 잔인한 곳이다. 아마드 제국의 외계인들은 3개의 성별로 나뉘는데, 남자는 인류와 비슷하게 남자지만, 여자가 좀 특이하다. 생식기와 난소를 가진 성이 있고, 자궁만 가진 성이 있다. 생식기와 난소를 가진 성이 '지배성'으로 불린다. '최고성'은 제국의 모든 이권과 권력을 갖고 있으며, 남성은 노예와 군인으로 자궁만 있는 여성은 재산으로 취급한다.
아마드 제국은 잔인할 뿐만 아니라 매우 부패했는데, 이미 아마드 제국에는 악한 자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고, 착한 사람만 빠져 나올 수 있는 감옥이 있다. 물론 착한 사람이라도 아주 오래 걸려야 빠져 나올 수 있는 감옥이다. 그런데 부자들은 뇌물을 주고 이 감옥을 그냥 빠져나온다. 이런 사회가 유지 될 수 있는 기본이 바로 '아마드 게임'이다.
아마드 제국의 취직이나 출세는 아마드 게임에 의해 정해지고, 아마드 게임에서 높은 점수를 따면, 높은 지위, 심지어 아마드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가 될 수도 있다. 얼핏보면 공정하지만, 이 게임을 잘 하기 위한 교육은 오직 '최고성'에게만 허락된다. 쉽게 말해 대학을 '최고성'만 갈 수 있다.
게임
구게는 아마드 제국에서 아마드 게임을 하게 된다. 컬쳐는 아마드 제국의 호전성으로 볼 때, 컬쳐를 침략할 가능성이 높고, 컬쳐와 아마드 제국이 겨룬다면, 컬쳐가 당연히 이길 정도의 기술을 갖고 있지만, 그 전쟁으로 인해 컬쳐가 지켜온 윤리의식이 무너질 것을 걱정하고 있다. 전쟁을 하면 컬쳐는 아마드 제국의 영토에 점령군을 파견하고, 아마드 제국을 억압할 것이고, 그것이 컬쳐의 시민들에게 반발을 일으키면, 컬쳐 역시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컬쳐는 특별한 사절 한 명을 보내 컬쳐가 아마드 제국이 생각하는 것처럼 강력하지도, 우월하지도, 위협적이지도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게 하려고 한다.
컬쳐의 콘텍트는 구게가 아마드 게임을 하면, 평생 아마드 게임을 해온 아마드 제국의 관료들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구게는 아마드 제국을 살펴보며, 그들의 부조리와 부패와 악을 알아가게 되면서, 자신의 스캔들을 막기 위해 억지로 아마드 제국으로 끌려온 권태로운 학자에서 분노에 불타는 심판자가 된다.
결국 구게는 아마드 게임에서 엄청난 성적을 내며, 아마드 제국에게 위협이 되기 시작한다. 구게의 성적은 일반 관료 뿐만 아니라 고위 관료 심지어 황제를 위협할 정도가 된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유로 구게가 최종 시합에서 이기더라도, 아마드 제국민에게는 구게가 진 것으로 조작된 방송이 나가도록 하게 된다.
진실
구게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아마드 게임이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아마드 제국을 지탱하는 근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마드 게임은 곧 아마드 제국이다. 하지만 더 큰 판에서 아마드 게임은 아마드 제국과 컬쳐 간의 전쟁이었다. 그리고 아마드 제국과 컬쳐간의 정신적인 대결이기도 했다. 구게는 아마드 게임을 위해 아마드 제국의 말을 배운다. 그리고 아마드 제국 문화에 젖어들면서 컬쳐와 아마드 제국간의 차이를 극명하게 알게 된다. 그리고 컬쳐의 일원으로써 아마드 게임의 권위를 붕괴 시킨다.
소설 초반부에 구게는 매우 실제같은 전쟁터에서 헤맨다. 하지만 그건 게임이었다. 아마드 게임은 그저 게임 같았지만 진짜 전쟁이었다. 그것도 컬쳐에 의해 매우 세심하게 조율된 게임이었다. 컬쳐는 구게가 게임에서 이길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상했다. 그리고 구게가 아마드 제국에 대한 분노를 갖고 아마드 게임의 끝까지 올라가서 아마드 제국의 권력층을 심판하도록 유도했다. 컬쳐는 아마드 제국과 전쟁을 하지 않고도 아마드 제국이 스스로 붕괴할 수 있는 묘수와 구게라는 게임말을 찾았다.
마인드가 지배하는 컬쳐에서 행운은 있을 수 없다. 운명 역시 마찬가지다. 컬쳐는 윤리적인 사회 운영을 위해 매우 세심하게 만들어진 컬쳐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컬쳐의 시민들은 그 언어 위에서 생각을 만들어낸다. 우연이라고 여긴 모든 것들은 마인드들에 의해 만들어진 거대한 판이었다. 진짜 게임의 플레이어는 결국 컬쳐 자신이었던 것이다.
시스템과 마크 주커버그
'게임의 명수'는 페이스북의 CEO 마크 주커버그가 추천한 책이기도 하고 그걸로 마케팅도 많이 했다. 이언 뱅크스는 거대한 시스템이 어떻게 움직이고 그 시스템의 해택을 받는 사람들을 어떻게 조정하는지 매우 냉정하게 다뤘다. 시스템은 결국 생각과 운명을 지배한다. 그리고 시스템 안의 사람들은 시스템이 가진 문제를 인지조차 하지 못한다. 구게는 아마드 제국을 악으로 결정내리지만, 게임판을 보고 있는 독자는 이게 과연 선악으로 구별할 수 있는 그런 쉬운 문제인지 고민하게 된다.
페이스북은 독특한 시스템이다. 일단 페이스북 안에서는 '좋아요'를 기반으로 의사표시와 관계가 맺어지고 정보가 흘러간다. 모든 사람들은 평범하고 선량하며, 대다수 경우 친절하다. 나이와 성별, 직위에 상관없이 서로 동의하면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언어가 허락한다면 대화도 할 수 있다. 여러가지 유용한 정보를 공짜로 얻을 수 있고, 사회적인 효용도 얻을 수 있다.
페이스북에도 우연은 거의 없다. 모든 것은 계산되고 추천되고 예측된다. 사람만 좋은 것을 골라주는게 아니라 시스템이 좋은 친구와 정보를 찾아주기도 한다. 또 문제가 생기면 즉각적으로 시스템에 신고하거나 도움을 청할 수 있다.
주커버그가 이 소설에서 본 것이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소설이 추구하는 바가 그렇게 비관적이지는 않다. 요약한 내용에서는 컬쳐가 기계에 의해 교묘하게 지배되는 것 같지만, 책을 읽어보면 구게가 가진 정의감과 신념이 아자드 게임을 무너뜨린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약간의 동기부여와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 작가의 다른 소설인 대수학자는 균형을 맞춘다. 기계에 의해 지배당한다는 생각과 기계와 함께 살아간다는 생각은 매우 다르다. 언제나 자발적으로 노예가 될 준비가 된 사람들이라면 기계가 자신들을 지배하도록 한다. 준비가 된 사람들이라면 기계를 친구로 받아들인다.
특히 그 어느때보다 기계의 발전이 현실과 가깝고 빠를수록 막연한 공포에 빠져 억측하는 것보다 생각이 중요하다. 어쩌면 SF소설은 미래를 준비하는 면에서 가장 도움이되는 장르다. 사람은 바보상자만 보지도 않았고, 스마트폰의 하인도 아니다. 인류는 항상 놀라운 것들을 만들어냈고, 놀라운 것들과 함께 사는 법도 배워나갔다. 지배 당하느냐, 지배하냐만의 있는 관점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만일 아자드 제국이 컬쳐와 공존한다는 답을 찾았다면, 단 한 명의 플레이어에게 멸망당하지 않았을 것이다.